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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11, 2010

믿는 자이든 믿지 아니하는 자이든 살 길은 십자가

난 거룩한 척 하나 너무 참담한 죄인이다.
음란, 쾌락, 세상을 따라 가는 것들.
나의 의로 한 죄악을 짓지 않는다 괜찮다 하였으나
결국 다시 그 죄를 범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죄악된 존재를 보이셨다.
나의 마지막 붙잡는 게 깨어졌을 때 나는 모든 게 무너진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시 그 길을 보이셨다.
단 하나의 살길 십자가.
거룩하신 하나님, 이 모든 죄를 심판하셔야 한다.
그럼에도 날 사랑하사 이 세상에 대신 죽으려 오신 예수님.
그렇다. 주님께서는 내 죄 대신 죽기위해 이 땅에 오셨다. 날 살리시려 오셨다.
그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기적이고 참 기쁨인 것 같다.
그러나 이 나의 죄를 감당하신 십자가가 없이 난 주님이 태어난 날을 기뻐할 수 있을까?
그 의미를 생각해 보길 원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하나님이신 자신이 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살리시고자
나를 형제로써, 친구로써 부르시고자 그 십자가의 날 만을 기다리시고
다 이루셨다.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19:30)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크리스마스라고 다 좋아하지만, 정말로 나의 기쁨안에 주님의 십자가로 인한 기쁨이 있나?
주님과 함께한 고난과 절망과 죽음이 있어서 부활이 있었나?
종으로써 부르기도 감당치 못한 죄인인 나를, 주님은 부활하신 후
(요20:17)"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나를 형제라 부르셨다.
(요12:36)"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이 빛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믿으라 하신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잡으라 하신다.
(히2:2-3)"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참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그림자였던 천사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것 조차도 다 이루셨다면 참된 구원의 말씀을 이루시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것은 참된 구원임과 동시에 참된 심판이다. 그것이 십자가다.
이 말씀처럼 이 십자가의 복음을 등한시 여기고 결국 믿지 않는다면, 결국
(히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여기있는 '그들'처럼 이 복음이 아무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그 삶은 여전히 죄의 종 노릇 할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믿지 아니 하는 자를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시95:11) 안식에 거하지 못한다 즉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한다. 즉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근원(Source)이신 하나님으로 부터 끊어진다는 의미이다. 즉 영원한 죽음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음으로 협박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생명을 주시려 끊임없이 시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럼 왜 그냥 안 주시나?
우리의 마음은 죄로써 물들어서 하나부터 끝까지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기 때문이다.
기도? 말씀 깨달음? 성령체험? 기쁨? 신비한 체험?
이 모든 것을 통해서 결국 십자가의 자리에 서서 그 십자가 앞에 무릎꿇게 되었나?
나의 모든 죄악을 주님께 고하며, 나의 죄악된 존재의 대한 통회가 있었나?
내 마음과 신령과 진정을 주님께 드렸나?
하나님을 사랑하나?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나?
그것이 삶에서 보여지나?
구원의 증거로써 기도, 말씀 깨달음, 성령체험, 기쁨, 신비한 체험 등등을 대지만 이 모든 것이 결국 주님의 십자가로 인도하여 무릎꿇게 하지 않았다면 이것들이 구원의 증거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십자가만이 유일한 길이고,
결국 십자가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시니까,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자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십자가에 우리는 한 목소리로 외쳤다 "못 박아라! 예수 못 박아라!"
그 자리에는 유대인만 있었고 나는 없었다 말하겠지만, 우리는 결국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면서 결국 하나님을 죽이려 했고 결국 하나님께서 죽으셨다.
죽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죽을 수 있는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생각해봐라.
아무리 불효자식이라도 사고뭉치에 범죄자이여도 평생을 사랑으로 키운 아들이 죽으려 할 때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죽고 싶다하는 부모의 마음. 그렇지만 인간은 자신이 남을 대신해 죽을 수 없다. 빚쟁이가 남의 빚을 갚아줄 수 없듯이 죄인이 다른 죄인 대신해 죽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크사 우리를 아들, 딸로 삼으시고자 하셔서 자기 자신이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그 분만이 죄가 없으셨고 이에 죽었다 살아나실 수 있었다. 이로써 마귀의 가장 큰 권세인 사망의 권세가 깨졌다. 죄로 인해 더이상 죽지 않아도 되는 길이 생겼으니까. 그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함께 살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다고 하나?
(요17:6)"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담과 하와를 시작해서 우리의 탐욕으로 내가 왕노릇하려 하였다. 그렇지만 왕으로 섬길 수 없는 이가 왕의 자리에 있을 때 나라가 몰락하듯 내가 나의 왕노릇을 할 때 결국 망하고 만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믿음으로도 내가 바로 주님의 것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며 내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회개를 할 때 주님께서 그 마음을 보시고 이것이 진실한 고백일 때 나의 마음에 진정한 왕으로 오신다. 그럴 때 다윗 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나라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졌듯이 주님께서 왕이 되실 때 이제는 유한한 생명을 가진 왕이 아니기에 영원히 나의 왕으로써 내 마음에 거하시고 이에
(요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 기도가 이루어진다.
이 기도를 신실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이루신다.
그렇기에 만약 정말 이 말씀이 이루어 질것을 듣고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하나님안에 거하게 하실 것이다.
여기서 택하신 백성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이다.
주의 말씀을 믿을 때 주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주께 엎드려 회개하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며 주인의 자리를 맡기게 되고 그때에 안식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들이 주님께서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 말씀하실 때 왕이신 그 분께 순종하게 되고 순종하는 그 자들이 주님의 것인 것이다.

정말 말씀이 믿어지나?
정말 믿지 못하겠다면 말씀을 최소한 밑져야 본전이라도 마음을 다해 읽어보아라.
구약이 어렵다면 신약부터 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라.
그리고 그 말씀들이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이야기임을 보아라.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말씀하실 때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제자들을 꾸짖으실 때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병든 자를 치료하실 때 나를 치료하시는 것으로
죄를 사하실 때 나의 죄를 사하시는 것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내가 죽이는 것으로
부활하셨을 때 나를 위해서 부활하신 것으로
그렇지만 이 모든 말씀을 내가 원하는 것만을 보는게 아니라 바로 그 모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삶에 말씀 하시는지 봐라!
분명히 지금도 당신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다! 말씀을 읽음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어라!
음성이 직접 들리는 게 아닐지라도 마음에서 생각속에서 나의 생각과는 다른 말씀하시는 주님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자아가 강하고 내가 교만하고 내가 왕일 때는 그 소리가 미세할 지 모르나
주님과 교제가 깊어 갈 수록 더욱 선명히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시는 지 알것이다. 겸손히 이 말씀에서 진리를 찾아보아라.
분명히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자리로,
세상에서 죽음으로 보여서 피하나 정말은 생명인 십자가의 자리로 부르시고 계실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제가 은혜 받은 것 같네요.
정말 그렇습니다.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말씀되신 주님께서 이 글을 쓰게하심으로 생명을 주시는 것을 보네요.
믿는 자이든 믿지 아니하는 자이든 살 길은 십자가 밖에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되네요.
말씀에 믿음으로 화답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Saturday, September 25, 2010

마음의 소유자되신 주님

오늘 말씀 (왕상8:54-66)을 보며 내가 온 마음을 다 드릴 수 없는 존재임을 다시 고백하게 되었다.
(왕상8:61)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라고 말한 솔로몬과 그 모든 백성이 이만 이천마리의 소와 십 이만 마리를 희생제물로 드렸음에도 솔로몬이 말년에 하나님을 떠났듯이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 관계없음을 본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을 본다. 구원 받은 자의 마음 또한 여전히 죄성이 남아있어 죄를 사랑하고 세상을 향해가는 마음을 막을 수 없음을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하나님을 사모하고 죄를 미워할 수 있는 이 마음을 구하길 원하신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는 절대로 이 죄성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고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겉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에서 진실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삶을 자세히 보면 그 사람들도 다 본질적인 죄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의 삶에 간섭하셔서 죄를 짓고 있을 때 돌이키시고 그 사람들을 지켜주셨다. 주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기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그럼에도 믿음이 없어 이스마엘을 종을 통해 낳았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약속을 확인하게 하시고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사라의 죽어있는 태를 여사 이삭을 낳게 하셨다. 그를 통해 아브라함은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받게 하셨다. 아브라함 스스로가 노력하였을 때는 결국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는 이스마엘 족속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끊임없이 약속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결국 불가능하게 보였을 때 그 아들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죽은 것에서 생명을 내신 것이다. 이삭은 자신이 에서를 사랑하여 야곱 대신 에서를 축복하려 하였다.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창25:23)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라 하셨는데 그것을 그 아내 리브가를 통해 들었었을 것임에도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축복하려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결국에는 야곱이 그 약속을 받게 되었다. 그 것을 깨달은 이삭은 (창27:33)에 보면 "심히 크게 떨며"라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임을 깨달았기에 그는 자신이 야곱에게 한 축복을 되돌이키지 않았다. 에서는 미워하시고 야곱을 하나님은 사랑하셨다.(롬9:13) 왜?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의 섭리다. (롬9:11)에 보면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라고 하였다.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다: 행위가 아닌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불의하신가? 아니다. 왜냐하면 (롬9: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라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다. 그 말은 즉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신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안에 계신게 아닌 시간밖에 계시기에(시간을 창조하셨기에) 야곱과 에서의 마음을 이미 아신 것이다. 에서는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의 축복을 경히 여겼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창25:34) 그러나 야곱은 어떠한가? 야곱은 속이면서까지 빼앗으려면서 까지 이 축복을 받고 싶어했다. 정말 믿음이 있었다면 속이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즉 "큰 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는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축복을 쟁취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를 사랑하시나? 인간적인 방법까지라도 써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는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다 죄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자라게 하시고 믿음을 키워가게 하셨다. 자신의 모든 소망과 힘이 없어 끊겼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믿음을 주셨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역사하신다. 이 성경에 있는 말씀 그대로 이루어 가신다. 그것을 보는 것은 내 삶에서 이다. 이번 학기에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죄인임을 인정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주셨다. "내가 이런 것을 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나, 하나님 제 마음을 주님께로 돌려주세요."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신실히 이 기도를 이루셨다. 그리고 이 기도는 나로부터 나오지 아니함을 고백한다. 정말 정직히 내가 어떤 죄를 범할 때 그 죄를 사랑하고 원하는 내 죄성을 고백하며 행위의 죄 하나 하나를 못 박는게 아니라 내 자신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이 죄들로 부터 날 멀어지게 하셨다. 물론 여전히 똑같은 상황이고 똑같은 유혹이 온다. 그러나 내 마음이 이 죄를 품으려 할 때, 주님께서 이것을 알게 하시고 주께 다시금 2000년전 내 자아가 십자가에서 이미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음으로 선포한다. 내가 그럼 이렇게 믿음이 있는 자 있가? 내가 믿음이 있어서가 아닌 내가 연약하기에 주님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도 하나님께서 날 여기로 인도하신 것이지 내가 한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신실하게 말씀을 이루시는 주님의 약속과 택하심을 따라 나를 택하시고 은혜로만 날 이 자리에 서게 하셨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우리는, 인간은 죄인이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마음을 다 잡아서 "자 이제 주님께 나아가자!"한다 해서 주께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본성은 주님으로 부터 멀어지려 하지만 오직 우리의 마음의 소유자 되시고 또 그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이루시고 나로써 이 말씀이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게 하신다. 정말 그래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라 하는 것 같다. 나를 주님의 사랑에 가두시고 주님의 십자가에 가두시고 주님의 은혜에 가두시고 주님의 긍휼에 가두셔서 내가 생각하고 행하고 뜻하는 것을 꺽으시고 주님이 생각하고 행하고 뜻하시는 그 것을 내 마음에 부어주사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강권적이나 이것이 은혜다. 이것이 강권적이나 이것이 싫지가 않고 마음에 기쁨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를 향한 계획이 완벽하시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수 없이 죄를 지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중심에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변치 않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정말 그리고 죄에서 자유한 삶이 주님을 사모하고 살다보니 되어있게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솔로몬을 통해 모든 행위를 받지 않으시고 십 만마리의 제사보다 오직 이 모든 희생제물 대신 단 한 번의 희생제사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드려진 이 희생제사를 받으사 그 희생제사를 통한 죄사함을 믿는 그 마음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Tuesday, February 2, 2010

내 주인은 오직 예수님

"내 주인은 오직 예수님
다른 이름은 없네
나의 갈 길은 오직 십자가
다른 길은 없네
주의 십자가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산
난, 나의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라가리
다른 곳 돌아보지 않고
난, 십자가의 길을 가리."

오직 십자가만이 나의 자랑, 나의 고백.
오직 주의 보혈만이 나의 자랑, 나의 고백.